DEVORE FIDELITY Orangutan O/96

본문

DEVORE FIDELITY Orangutan O/96

드보어피델리티  오란오탄96 스피커 ​

실물을 보는 순간 감탄부터 나왔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고급스러웠던 것이다. 전면 배플의 자작나무 합판 결이 그대로 노출됐고 그 위를 글로스 마감한 것이 예상외로 하이엔드 가구 같은 인상을 풍겼다. 소리는 더 놀라웠다. 외관과 유닛을 보면 푸근하고 온기 있는 소리, 딥베이스이긴 하지만 단단한 맛은 없는 저역일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 대단한 오해였다. 이 스피커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오히려 해상력과 디테일, 그리고 단단하면서 풍성한 저역이었던 것이다.

고백건대, 그때부터 필자의 ‘오랑우탄 앓이’가 시작됐다. 어떻게 이런 사운드가 저런 빈티지한 외관에서 나올 수 있을까. 왜 인클로저를 무한배플처럼 펑퍼짐하게 만들었을까. 제작자는 과연 뭐하던 사람일까. 그 수많은 이름 중에서 왜 하필 오랑우탄을 모델명으로 가져왔을까.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내가 정말 그 돈을 주고 이 스피커를 집에 들일 수 있을까’. 이러던 차에 하이파이클럽에서 정식 리뷰 의뢰가 들어온

것이었다
먼저 팩트부터 짚고 넘어가자. ’오랑우탄 O/96’ 스피커는 2웨이 스탠드 마운트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다.

1인치 실크 돔 트위터가 위에 있고 바로 밑에 10인치 페이퍼 콘 미드우퍼가 있다.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뒷면 밑에 2개가 나란히 가로로 나 있다.

싱글 와이어링 바인딩 포스트는 바닥 면에 있어 겉에서는 안 보인다. 후면 디자인의 폼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1인치 트위터는 드보어 피델리티의 제작자인 존 드보어(John Devore)가 결정한 스펙에 따라 유럽의 한 제작사가 만든다고 한다. 트위터 둘레의 웨이브 가이드가 비교적 넓고 깊은 것은 이 웨이브 가이드가 혼 역할을 하게끔 설계됐기 때문이다. 후면 파를 소멸시키기 위해 트위터 뒤쪽이 별도 챔버에 수납된 것도 특징이다.

미드우퍼의 경우 10인치 페이퍼 콘 자체는 유럽의 한 작은 제작사에서 만들지만, 나머지 부분은 노르웨이 시어스(SEAS)에서 만든다. 물론 설계 자체는 존 드보어가 했다. 서라운드(엣지) 재질은 공개가 안 됐지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탄력적이고 유연하다. “폼 서라운드처럼 작동하면서도 고무 서라운드처럼 내구성이 좋다”는 설명이다.

베이스 리플렉스는 후면 아래쪽에 나있는 직경 3인치, 안길이 5.5인치의 포트 2개가 담당한다. 존 드보어에 따르면 이 포트 2개는 30Hz대 중반 주파수를 핸들링한다. 크로스오버 회로가 몇 차 오더인지, 크로스오버 주파수가 얼마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바인딩 포스트는 동(copper) 재질의 미국 카다스(Cardas)제를 싱글 와이어링으로 쓴다.

외관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급스럽다. 예전 어떤 댓글을 보니까 ‘덜렁 2개 유닛에 목재 인클로저인 스피커가 그 가격이라고?’라는 반응이 있다. ‘재료값이 얼마나 한다고’라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스피커를 가까이서 본다면 그런 말은 함부로 못하리라. 필자 역시 그랬으니까. 그냥 외관에서 품격과 돈값이 철철 넘쳐 흘린다.

덩치는 생각보다 크다. 스탠드를 포함해 높이는 91cm, 폭은 46cm, 안길이는 31cm, 무게는 25kg을 보인다. 키에 비해 가로폭이 넓고 상대적으로 안길이가 짧은 스피커다. 후면이 노출된 오픈배플은 아니지만 최소한 무한배플을 흉내낸 스피커처럼 보인다. 인클로저 재질은 배플이 2.2cm 두께의 자작나무 합판, 다른 캐비넷은 서로 다른 두께와 밀도를 보이는 MDF다. 높이 19cm의 전용 스탠드는 단풍나무. 마감은 배플의 경우 레이스 라인 월넛 등 다양한 베니어, 다른 캐비닛은 블랙 단풍나무 베니어로 돼 있다. 배플, 캐비닛, 스탠드 모두 최종 마감은 고광택 폴리에스터로 도장돼 있다.

스펙은 특이함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우선 공칭 임피던스가 10옴이고 감도가 96dB다. 그래서 ‘O/96’이다. 제작사에 따르면 어떤 경우에도 임피던스가 8옴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 스피커 자체가 처음부터 소출력 진공관 앰프로도 잘 울릴 수 있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주파수응답특성. 몇 dB 감쇄인지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수치상으로는 좀체 납득하기 힘든 25Hz~31kHz를 보인다.
 

키워드 : 존 드보어, 오랑우탄, 고감도, 스텝 리스폰스, 스테레오파일 A클래스
 


 
좀더 들어가보자. 우선 드보어 피델리티는  드보어가 200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설립한 제작사다. 존 드보어는 드럼 뮤지션 경력 30년, 스피커 제작 경력 20년, 하이파이업계 종사 경력 18년을 자랑한다. 1980년대부터 하이엔드 오디오 숍에서 일하며 밴드에서 활동했다는 얘기다. 학교는 미국 명문 RISD(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를 나왔다.

드보어 피델리티가 처음 선보인 스피커는 ‘Gibbon’(기번). 기번은 우리말로 긴팔원숭이인데, 시청기인 오랑우탄도 그렇고, 예전 인기모델 이름이 나이 많은 고릴라 수컷을 뜻하는 ‘Silverback’(실버백)인 것은 사연이 있다. 존 드보어가 존경하는 삼촌 어번 드보어(Irven Devore)가 저명한 영장류 동물학자이자 인류학자였기 때문. 삼촌에 대한 오마주 차원에서 기번, 오랑우탄, 실버백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어쨌든 드보어 피델리티는 2002년에 출시한 ‘Gibbon Eight’로 대성공을 거뒀다. 트위터가 미드우퍼 밑에 있는 2웨이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로, 리뷰용으로 제공됐던 샘플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리뷰어가 리뷰가 끝난  모두 구매했기 때문이다. 이 ‘기번’ 시리즈는 이후 ‘Gibbon Super Eight’, ‘Gibbon 88’, ‘Gibbon Nine’을 거쳐 3웨이 구성의 ‘Gibbon X’로 이어졌다.

기번 시리즈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소출력 진공관 앰프와 매칭할  있도록 감도를 최대한 높여 나온 시리즈가 ‘오랑우탄’이다. 기번 시리즈도 90dB 안팎의 고감도 스피커였는데 이를 더욱 높인 것이다. 먼저 나온 것은 대구경 미드우퍼와 넓은 배플을 갖춘 ‘오랑우탄 O/93’이었는데, 디자인은 궤짝형 알텍 ‘Valencia’(발렌시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감도는 모델명에서 유추할  있듯이 93dB이다.

 ’오랑우탄 O/93’에서 감도를  높이고 주파수응답특성을  평탄케  것이 바로 이번 시청기인 ‘오랑우탄 O/96’이다. 2012년에 처음 출시된 ‘오랑우탄 O/96’은 감도를 96B로 더욱 높이고, 주파수응답특성은 저역 하한을 ’오랑우탄 O/93’의 31Hz에서 25Hz로 낮췄다. 고역 상한은 31kHz로 동일하다. 플로어 스탠딩에서 전용 목재 스탠드 위에 올려놓는 스탠드 마운트 타입으로 바뀐 점도  변화다.

그러나 ‘오랑우탄 O/96’의 가장  특징은 넓은 배플이다. 존 드보어의 여러 인터뷰 등을 종합해보면  넓은 배플의 존재 이유는 ‘스텝 리스폰스’(step response)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 스텝 리스폰스는 고역과 저역의 시간 차이와 에너지 차이에 의해 응답특성이 특정 주파수에서 딥(dip), 즉  꺼지는 현상이다. 특히 저역의 경우 후면파에 의한 에너지 감소 현상(위상이 서로 정반대인 정면파와 반사파가 중첩)이 골칫거리였다. 무한배플이 등장한 것도  후면파가 되돌아오는 것을 최대한 넓은 배플로 막기 위한 것이다.

 드보어는 “코너형이나  로딩 스피커처럼 스텝 리스폰스를 최소화하면서도 현실적인 설치가 용이하도록 넓은 배플을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배플의 넓이와 높이, 안길이는 10인치 미드우퍼의 물성에 맞춰 최적화했다는 설명도 잇따른다. 따라서 ‘오랑우탄 O/96’은 넓은 배플과 이를 통한 스텝 리스폰스의 저감으로 1) 저역 하한을 내리고, 2) 에너지감을 확보하는 동시에 3) 트위터와의 매끄러운 통합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와 미드우퍼가 바싹 붙어있는 점, 두 유닛이 배플 위쪽에 몰려 있는 점도 스텝 리스폰스와 회절(diffraction. 등거리일 때가 가장 안 좋다) 저감을 위한 설계일 것이다.

끝으로 수입사에서 하도 ‘스테레오파일 A클래스 4년 연속 등재’를 강조하길래 직접 찾아봤다. ‘오랑우탄 O/96’이 나온  2012년이고, 처음 스테레오파일 추천 기기 목록에 오른 것은 2015년의 일이다. 2014년에는 ‘오랑우탄 O/93’이 올랐었다. ‘오랑우탄 O/96’은 이후 2016년, 2017년, 2018년 4년 연속 클래스 A(Restricted Extreme LF)에 올랐다. 특히 2017년에는 윌슨오디오의 ‘Alexx’와 함께 올해의 오디오 스피커 부문 공동우승작으로 선정됐고, 2018년에는 올해의 오디오 스피커 부문 결선에 진출했다.


드보어 피델리티의 설립목적이나 설계철학은 예의 소박하고 평범한 편이다. “소출력 진공관 앰프로도 쉽게 울릴  있는 노멀한 외관과 소리를 갖춘 스피커를 만들기 위해서”이고, ‘정확함’(accurate)과 ‘음악성’(musical)을 추구한다. 이는 웬만한 제작사가 입에 그냥 달고 다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랑우탄 O/96’ 시청을 통해 그게 허언이나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꼼꼼하고 고급스러우며 생각보다 훨씬  덩치에 놀랐고, 광대역을 바탕으로  해상력과 편안함의 조합에 두 번 놀랐다. 이 스피커라면 집에서  음악  음악 들으며, 그리고 세팅과 매칭을 이리저리 바꿔보며 즐겁게 오디오 생활을   있을  같다. 인생 스피커를 찾는 애호가들에게 일청을 권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